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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3일 금요일

Babel (2006)



Alejandro González

천재감독이라고 불리는 멕시코 태생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가 만든 영화.

이 영화는 3개의 스토리가 각각 다른시간으로 존재한다. 두 부부, 모로코 형제, 베이비시터와 아이들, 그리고 부녀. 그리고 아랍, 미국과 멕시코, 일본이라는 문화를 절묘하게 섞어놓았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오늘날의 의사소통의 단절을 잘 짜여진 스토리로 보여준다. 이 세대는 언어가 문제의 장벽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마음이라는 언어가 큰 장애물이다.

모로코 형제는 서로가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형의 죽음으로 동생은 형과의 화해를 하고 있다. 미국부부는 아내가 총을 맞은 후 몸은 죽음으로 향하지만 그 부부의 관계는 생명으로 향한다. 일본의 딸은 마음을 열고 (감독은 전라의 몸으로 마음을 여는것을 표현했다) 아버지와 화해를 한다.

Miscommunication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왜 우리가 그렇게 단절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제시는 없다. 다만 우리사회의 막힌 부분들이 많이 있고 영화의 엔딩장면처럼 아버지와 딸의 포옹처럼 안고 품어야 한다는 결론을 주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첫 장면의 모로코 가족이 총을 얻게 되면서 비극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총이 가족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 했지만 결국엔 총이라는 불청객이 그들 가족을 앗아가버린다.

Perfume (2006)

군시절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작가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가 잃어버린

냄새를 그 사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랑스 영화답게 고전미가 느껴지지만 뒷부분에서는 꽤 과감한

시도였다. 주인공이 너무 미치광이처럼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이 진짜로 열망했던 것은 냄새자체를 즐기는

것이었을텐데..

다른 사람의 체취를 영원히 간직하려한 주인공.

본향을 찾아 가는 길.

그리고 향수 한방울로 마무리.

Seven Samurai (1954)


영화를 하는 사람에게 거장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본다는 것은 최고의 영화수업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난 운이 좋다. 27살이라는 나이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두번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VHS 두 개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고 이것은 나의 4번째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다.

내 영화버디 Chuck과 대화를 나눈것처럼 이 영화를 볼때마다 우리는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씬을 발견한다. 오늘(1/28)은 또한 Dan이라는 친구를 처음 만났다. 프랑소와 트뤼포, 빔 벤더스,

알렝 르네, 끌로드 샤브롤 등을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자기는 올드보이를 재밌게 봤다고 말했다.


Part I


Seven Samurai는 1,2,3 박자를 가진 북소리의 연속으로 시작한다. Aero Theater의 관객들은 역시 영화를 볼 줄 알기에 크레딧이 시작하는 순간 박수로 답례한다. Old man이 we fight를 선언하고 마을사람들은 배고픈 사무라이를 찾아 나선다. 1500년도의 일본이나 지금의 현실세계나 세상에는

먹을것이 최대의 고민인것 같다. 꿈을 따라 살지만 결국엔 흰 머리만 남게 된 사무라이의 도움으로

Bandits의 침략에 놓이기 된 peasants들은 7명의 사무라이를 영입한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첫번째 파트이다.


Part II


카게뮤사처럼 이 영화도 공동체(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구로사와 아키라.

키쿠지로가 고아가 된 어린 아이를 구하고 자기도 이 아이처럼 고아였다라는 말을 하는 장면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또한 거칠기만 하던 키쿠지로는 동료의 죽음앞에서 그는 슬픔이라는 장벽에 부딪힌다. 비 오는날의 마지막 전투로 소작농들은 마을을 지키지만 3명의

사무라이만이 목숨을 건지고 그들은 결코 전투에서 진셈이다. 캡틴 사무라이의 말처럼 승리는 소작농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Seven Samurai는 masterpiece이다. 걸작이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찬양하는 이유는 걸작은 한 번 보고 버려지는 값산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역시 인생이다. To live, 전투에서 승리를 했지만 사무라이들은 동료를 잃게 된다.


이 영화는 우리가 왜 사는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준다.

전투에서 이기는게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엔딩과 함께.